클래스

각각의 아이덴티티

2012年8月16日

사실은 작년 12월 17~18일 도쿄에서 개최된 비즈니스 클래스에 참가하였습니다.

저의 집은 도쿄 칸다의 진보초로, 전쟁 전부터 할아버지가 시작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장사는 손해 투성이에 경리에게 그만두는 편이 좋겠다고 계속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우울증을 진단받았고, 어머니는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를 때리며 키우셨습니다. 저는 저대로 어렸을때부터 병이 잦아,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감각이 없이 항상 불안감에 가득 차 성인이 되어서는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여 스스로 뭘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12월 비즈니스 클래스에 참가하였을 때, 집의 장사를 돕고 있는 것도 있어 프로세스 종이에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 내가 뭘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것, 연애 등을 써서 잘게 찢어 버렸습니다.

클래스가 끝나 다음날부터 가게에 메뉴얼 2권을 가져가 가게의 아이덴티티에게 말을 걸거나, 토지나 건물, 아르바이트들을 정화(클리닝)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신 것은 12월 31일, 가까운 대학병원애서 감기라고 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아 1월3일부터 입원하였습니다.

검사한 결과, 뇌막염이라고 진단 받았으나 점점 악화되어 갔습니다. 뇌막염은 뇌의 병이므로 뇌외과에 입원했었는데 입원 2주 정도 뒤에 반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어버려 가게는 폐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원래 아버지는 장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할아버지를 계승하게 된 것도 있고,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 둘 용기가 없어 계속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를 위해 결단력과 행동력을 발휘하고 있는 아버지를 처음 봤습니다.

돈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뇌외과 의사들로서는 진단을 내릴 수 없어 비급여 약을 투여했고 1인실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돈을 쓰고 우리들도 식비와 생활비가 필요했습니다.

정화(클리닝)는 12스텝을 기본으로 하여, 그때마다 나오는 감정, 감각, 병원에서 일어난 일, 의사의 이야기, 어머니의 병, 간호사와 의사들의 이름, 병원의 토지와 건물, 병실, 방 번호, 약 등…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정화(클리닝)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도 2권의 메뉴얼을 가지고 가서 병실에게 정화(클리닝)를 기억해줄지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돈 봉투의 영상과 함께 ‘이 돈을 사용해주세요.’라고 하는 말이 뇌리에 스쳐 찾아보았더니 언니의 만기 보험금 610만원이 나왔습니다.

그쯔음에 어머니의 대각선 앞 병실에 제 동급생의 어머니가 입원을 하셨습니다. 그 분과 만난 것은 26년 만이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였더니 고액 의료를 위한 한도액 적용을 신청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여전히 뇌외과의 의사들은 어머니의 병을 특정하고 있었습니다. 진단이 몇번이고 바뀌고 그때마다 싫다고 생각한 의사와 병원에 대한 불신감에 계속 정화(클리닝)를 했습니다.

어머니의 뇌가 조금씩 각성하려고 하면 망상, 환각, 환청 증세가 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얼굴은 알아도 저의 얼굴은 못 알아보는 증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에 걸리기 이전의 어머니는 항상 눈살을 찌푸리고, 말투도 무서웠지만 생글생글 웃고 있는 작은 아이처럼 변했습니다. 저의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는 해소되어버렸습니다.

2월6일 갑자기 의사선생님께 병원을 옮길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마침내 의사들이 어머니를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옮기는 병원은 전까지 있었던 병원의 본원으로 어머니의 병 중 뇌염 증세가 있었는데 뇌염치료의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 였습니다. 본원의 의사선생님은 금방 병명을 알려주었습니다.

‘급성 산재성 뇌척수염’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10만명 중에 2.5명꼴로 걸리는 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고 1개월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 뒤로도 정화(클리닝)에 의한 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역시 병원을 옮기고 나서도 1인실에서의 치료를 받았지만 하루 37만5천원은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병원을 옮기고 8일 뒤 아침 하루 5만3천원의 5인실로 옮겼다는 간호사로부터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또 제가 그런 연락을 받았을 때, 아버지는 전에 입원했었던 병원에 가서 입원비를 지불하였습니다만 한도액 적용이 2월1일부터 유효하여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던 것을 사무실의 분이 증명서를 발행해준 사무국의 본부와 협상하여 금방 입원비를 할인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사무실의 분이 딱하게 여겨 협상을 해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엔 어머니는 0원으로 큰 병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또 어머니는 동시에 자궁근종 수술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병 중 하나인 뇌염은 그 비율은 미미하지만 30대, 40대의 젊은 세대에 난소 이상으로 걸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근거로 어머니는 60대이지만 의사들은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자궁근종 수술도 3개월에서 반년정도 기다려야 가능 할 것이라고 했었으나, 갑자기 의사 선생님에게 4일 후에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3월 27일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다소 장애는 남아있지만, 귀엽고 솔직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가족끼리 그렇게 싸웠었는데 싸움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이 경험을 정화(클리닝)하고 있습니다.

사무국의 여러분 정말로 호오포노포노를 이 세상에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긴 문장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평화.

(40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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